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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라가야, 연맹왕국 아닌 고대국가로 봐야"
관리자 2018-02-27 조회 1123

"아라가야, 연맹왕국 아닌 고대국가로 봐야"

조수현 원장 연구논문, 기존 학설에 의문제기 "시기 구분 재설정 필요"


역사 교과서에서도 6개 가야 연맹왕국의 하나로 거론되는 아라가야에 대해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함안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라가야는 연맹체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고대국가 단계까지 발전했으며, 통상적으로 가야를 전·후기로 나누는 것과 달리 '중기가야'를 별도로 분류하고 아라가야를 그 중심국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한반도문화재연구원 조수현(47·경주대 외래교수·사진) 원장이 경상대 대학원 문화재학과 박사학위 논문 '고분자료로 본 아라가야'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최근 가야 왕국들이 고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기존 학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들이 속속 나오는 가운데, 특히 드물게 '아라가야'의 유적 조사를 기반으로 한 연구논문이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조 원장은 논문에서 "아라가야 고분군과 출토 토기를 통해 아라가야(함안)의 시기별 역사·문화 변천상과 사회구조를 분석한 결과 아라가야는 지역연맹체가 아닌 고대국가 단계까지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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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라가야 말이산고분군을 살펴보면 지배층의 고총이 5세기 3분기부터 집중적으로 축조되고, 고도(古都)지역 외에는 고총고분군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며 "이는 아라가야 영역 내에서 지배층의 고총체계가 획일적이고 말이산고분군에 지배계층의 권력이 집중됐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어 "아라가야는 가야읍을 중심으로 한 중심지역이 그 주변지역에 대해 직접지배방식을 행했고, 이를 통해 지역집단의 계층에 대한 위계화가 철저하게 통제·관리된 것으로 보인다"며 "말이산고분군을 왕묘로 한 가야읍 일대에 지배층의 권력이 집중된 중앙집권적인 국가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는 아라가야의 영역이 대가야와 소가야처럼 광역화되지 않고 중심지역에서 대략 반경 20㎞이내의 비교적 작은 영역권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아라가야는 적어도 4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까지 금관가야·대가야와 함께 가야사회의 중심국으로 성장·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조 원장은 "국사교과서에 서술된 가야사의 시기구분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우리나라 가야시기를 전기(김해)와 후기(고령)로 구분하는 현재 방식보다, 대가야가 발전하기 전인 5세기 전·중반대를 중기가야로 설정하고 아라가야를 중기가야의 중심국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초기국가의 지표를 아라가야 사회에 적용하면 아라가야는 4세기 후반에 초기국가로 성장했고, 5세기 전반대의 왕국(kingdom)을 넘어 5세기 후반 대가야와 함께 고대국가(state)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하고 "그러나 당시 백제와 신라의 가야 진출에 따른 갈등과 전쟁이 빈번한 시기임을 감안하면 아라가야는 고대국가 단계에 진입은 했으나 더 이상 안정된 고대국가사회로 발전하지 못하고 신라에 의해 멸망(560∼561년)당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조 원장은 경상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수료하고 함안박물관 학예연구사, 한국문화재재단 연구원, (재)경상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을 지냈으며 현재 양산에 있는 문화재조사전문기관 (재)한반도문화재연구원 이사장 겸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국내 학술등재지인 한국고고학보, 영남고고학보 등에 아라가야 관련 우수논문을 게재했고, 아라가야 관련 유적에 대한 다수의 발굴조사 경험을 통해 아라가야 고고학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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